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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지음

by 글쓰는전업맘B 2020. 9. 2.

 

 

하는 일이 홍보 마케팅이다 보니 CS를 포함한 고객의 반응을 직접적으로 접하고 대응해야할 일이 많은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내가 조금 손해보더라도 귀찮은 일 만들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가끔 어떤 사안에 대해 내 기준에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어떻게 대응해야할 지 난감할 때가 있다.

특히 요즘 성차별적 카피나 인권 감수성이 결여된 콘셉의 광고나 SNS 콘텐츠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는 일이 잦다보니 콘텐츠를 다루는 입장에서 부담이 되고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홍보라는 것이, 마케팅이라는 것이 사람 가려가면서 하는 것도 아니고, 화이트불편러의 페르소나를 기본 탑재한 요즘 사람들을 고려했을 때 무조건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프로불편러나 진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그들의 감수성을 인지하고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그런 의미에서 나도 모르게 차별주의적 사고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편으론 내 기준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비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해하고 싶어 선택한 책이었다.

 

시작은 그렇게 해서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의 의도 자체가 나의 무의식 중 불편한 부분을 들추는 것이다보니 잘 읽히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조금 읽다 말고 조금 읽다 말고..책을 사고 다 읽기까지 부끄럽지만 거의 1년은 걸린 거 같다.
그러다보니 책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고자 했던 의문에 대한 답은 어느정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드냐'

'모든 소수자 사정에 맞춰 챙겨주다보면 역차별 생기는 거 아니냐'

'좋고 싫음을 말하는 것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다'

위와 같은 말들, 솔직히 나도 생각해본 적 있는 말이다. 

최근 이슈가 됐던 의정부고 졸업사진처럼 악의 없이 행한 패러디에 죽자고 달려들어 비난을 쏟아붓는 것은 좀 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 성소수자들을 사탄으로 몰거나 차별을 정당하게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자유 아닌가 하는 생각 같은 것 말이다.

 

이 책에선 소위 '보통 사람들'이 소수자들의 주장에 반박하는 의견들, 생각들을 가감없이 다루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차별받는 사람들 입장에서 요목조목 대변하고 있다.

 

굉장히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와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며 그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좀 어렵고 다 기억하기가 어려워서 그 중 내가 속으로 뜨끔했던 것들,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반성했던 것들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이유

왜 웃긴가, 무엇이 즐거운가에 대해 먼저 고찰이 필요한데, 이 책에선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말한 우월성 이론과 토머스 포드의 편견규범이론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우월성 이론은 쉽게 말해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란 것이고, 편견규범이론은 일탈적인 행위가 유머를 통해 일종의 놀이가 되어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을 조롱하면서 다수의 웃음을 이끌어내는 풍자가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웃음이란 것이 타인의 불행을 전제해야 한다면 그 웃음을 유발하는 모든 개그는 나쁜 것 아닌가? 이 책에선 그 불행의 대상이 '사회적 약자'일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시대와 맥락에 따라 불행의 대상이 약자가 될지 불행의 정도가 허용 가능한 범위인지는 유동적이다. 다만, 어떤 개그로 인해 누군가 웃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면 죽자고 달려들거나 최소한 무표정으로 소심한 반대를 해야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의도하지 않았다거나 상처가 되는 행위인지 몰랐다는 사람들에 대해선 결과적으로 그 행동, 언행, 태도가 '억압에 기여'했다면 '책임'을 져야 하며, 그 책임은 '무의식적으로 했던 행동을 성찰하고 습관과 태도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라고 후에 덧붙인다.

모두 이해할 수 있고 수용 가능한 말이다. 다만 나는 '죽자고' 달려드는 과격함은 덜었음 좋겠고, 밑도 끝도 없는 책망보다는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인도하는 배려가 함께 이루어지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 싫어할 수 있는 권력

단순한 개인의 기호라 할 수 있는 '불호'와 범죄로까지 여겨지는 '혐오'의 차이는 뭘까. 내가 이해한 그 차이는 역시 그 의사를 표현하는 주체가 가지는 권력 유무에 있다.

한 사람의 인권은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일개 상품이 아니다. 싫다고 외면하면 폐기하거나 절판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소수자가, 장애인이 자신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광장으로 나와 내는 목소리가 듣기 싫을 순 있지만,

그 불호가 모여 그들을 사회에서 배제하거나 억압하는 데 원동력이 된다면 이 또한 어떤 권력에 의한 혐오가 되고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선 누구 하나 배제되지 않으며 '은폐된 불평등'이 없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3. 소수자의 이익은 다수자의 피해가 아니다

어떤 소수자를 우대하는 정책이나 규정이 생길 때마다 나오는 다수자 역차별 논란. 이 책에서도 당연히 다루고 있다.

우리 모두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소수자가 되기도, 다수자가 되기도 한다. 또한 그것을 가르는 차이에 대해서 논하자면 사실 전 인류를 어떤 범주로 나누는 것이 애매할 만큼 한 사람 한 사람이 갖는 특성과 사정이 모두 다르다.

우선, 그 차이를 모두 고려하여 포용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란 사례로 설명한다.
일순 생각으론 여성과 남성이란 생물학적 명확한 차이가 있고 이에 따라 화장실을 구분하여 마련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트랜스젠더나 인터섹스 등 이분법적 성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장애인의 경우 성별의 차이를 넘어 고려해 마련해야할 시설이 또 있다.

그런 식이라면 고려해야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한정된 재화와 공간을 갖고 그 모든 이들을 위한 화장실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고 당연히 반론을 재기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물론 어렵다. 매우 어렵다.

하지만 끊임없이 논의하고 개선하며 진보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가 적다고 당연히 혹은 항상 그들이 기본적인 권리를 포기해야 하거나 불편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은 억울한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해외에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만들기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나는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쇼핑몰에서 마련하고 있는 '가족 화장실'도 이런 맥락에서 만들어진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소수자의 기본 권익을 지키기는 것이

기존의 불평등했던 기회와 권리를 보다 평등하게 재편성하겠다는 의미일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것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이 참정권을 갖는다고 남성의 참정권이 침해되었는가?

만약 성소수자의 결혼이 합법화 된다면 비성소수자의 결혼에 규제가 생기는가?

장애인의 이동권을 신장하면 비장애인의 이동권이 침해되는가?

 

우리 모두 함께 공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더 나은 방법을 연구하고 변화하는 것이 다소 번거롭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누구 하나 남김 없이' 모두가 누리는 권리를 누릴 수 있기 위한 노력이며 또 진일보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함께 동참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와 관련한 갈등이 첨예하고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차별이란 것이 살인이나 절도와 같이 그 범법 행위를 제 3자 누구나 확인하기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맥락과 대상에 따라 차별의 유무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의 판단을 별도의 독립기구에 맡긴다는 것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차별금지법과 함께 '사회적 합의'에 대한 입장도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어떤 사안은 이미 명백한 차별이며 그로 인한 피해 사실이 명확하고 심각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 선제적으로 법제화 하여 피해를 입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동의하는 바이지만, 먼저 그 명확하고 심각한 피해 사실이 있다는 것을 사회가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기에 많은 시민단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애쓰고 있는 것일 것이다.

 

어느정도 사회적 약자를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하는 나 조차도(일단 여성이기도 하고) 이 책에서 말하는 모든 주장에 대해 아직 혼란스럽고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쓴이가 이 책에서 이야기 하고 싶었다던, 제안하고 싶었다던 아래의 의견은 전적으로 동의하고 지지하며 앞으로 실천하고자 한다.

 

"소속되기 위해 '완벽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거나 그런 사람인 척 가장하는 대신, 모두가 있는 그대로 어울리는 사람으로 환영받는 세상을 상상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모두 조금씩 긴장을 늦추어, 다소 느슨하지만 낯선 것을 품을 수 있는 여유로운 관계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하고 싶었다."

 

- 에필로그 우리들 pp. 209-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