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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오직 바라는 것은 '네가 너이기 때문에'

by 글쓰는전업맘B 2020. 7. 22.

 

출처: Pexels

 

결혼한 지는 6년, 연애기간까지 합치면 남편과 안 지는 만 10년이 넘었다. 그리고 시부모님과 안 지도 만 10년째다.

20대 초반,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 불같이 사랑했기에 연애 극초반부터 남편의 부모님을 실물로 만나보고 왕래하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아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결혼에 기역자도 생각하지 않을 때였으니까. 그래서 그때는 20대 초반의 여자아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아양과 애교를 피우며 '싹싹한' 아들 여자 친구로 분하여 부모님들을 대했었던 거 같다. 그것이 오늘날 어떤 화근이 될 줄도 모르고....

 

올해 초 막 코로나가 확산되기 시작할 즈음, 둘째 임신 막달이 되어 출산휴가에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만삭의 몸으로 5살 첫째의 독박 육아를 하게 되었다. 둘째 출산 준비도 하나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 평수 넓히느라 이사 온 지 한 달이 갓 넘은 때라 집도 어수선하던 때였다. 한 마디로 정신이 하나도 없을 때였다. 다행히 남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장기 휴가를 얻어 한 숨 돌리고, 며칠간 풀빌라 펜션으로 휴가도 다녀오면서 출산을 준비하던 때였다. 하루 이틀 심기가 좀 안 좋아 보이던 남편이 한숨을 푹푹 쉬며 지나가는 말로 어머니께 전화 한 번 해달라는 것이다. 응? 무슨 일이지? 진심 나는 짚이는 구석이 없어서 고민했다. 미리 말하자면 우리 가족은 매주 꼬박꼬박 영상통화로 시부모님께 안부인사를 드리고 있었고, 코로나가 있기 전까지는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시댁에 찾아뵙고 있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후 구정 때 뵙고 그 이후로 사태가 심각해져 한 달 반 정도 못 찾아뵙고 있는 정도였음)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우며 전화를 드렸다. 안 받으신다. 조금 이따가 또 드렸다. 안 받으신다. 흠. 이건 못 받으시는 게 아니라 안 받으시는 거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쫓겨난 기분이라 어이가 없어서 문자 남길 마음도 들지 않았다. 결혼 초 이미 이런 건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솔직한 말로 화딱지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럴 땐 정면돌파가 제일 빠르다. 나는 출산예정일 일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코로나고 나발이고 남편에게 주말에 시댁에 가자고 말씀드렸다. 

 

첫째 아이도 데리고 우르르 찾아뵈니 시어머니는 예의상 반갑게 맞아주시는 분위기였다. 어느 정도 인사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돈된 후 부엌으로 가시는 어머니를 쫓아 들어가 바로 말을 꺼냈다. 어머니 뭐가 서운하셔서 전화도 안 받으셨어요. 나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고 돌려 말하는 걸 딱 질색하는 사람이라 그냥 바로 지른 것이다. 어머니도 하실 말씀이 많으셨는지 바로 서운하셨던 마음을 뱉어내셨다. 시발점이 된 것은 내가 어머님께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이었고, 결론은 결국 그것이었다. 결혼하고 6년 동안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던 그것, 싹싹한 딸내미 같은 며느리가 되어달라. 그래서 나도 6년 간 줄곧 말씀드렸던 답을 드렸다. 저는 어머니가 상상하시는 그런 딸 같은 며느리가 될 수 없다.

 

어머니는 아들만 셋을 기르셨고 그토록 원하던 딸을 얻지 못해 결혼할 때부터 나를 딸처럼 생각한다는 그런 전형적인 말씀을 자주 하셨다. 초반에는 나도 가능하면 사이좋은 고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나름 노력했다. 평소 남편이랑도 특별한 이유 없이는 카톡을 잘하지 않는 내가 총천연색 꽃 사진과 함께 아침을 여는 인사말 카톡도 드려보고, 다소 시니컬한 말투를 갖고 있는 내가 어머님~어머님~하면서 콜센터 우수직원 같이 말도 걸고, 매번 반복되는 레퍼토리에도 영끌 리액션을 보이며 맞장구를 쳐드리곤 했다. 하지만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사람이 원래 자기 하던 대로 살아야 한다고. 이런 일에 내가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점점 시댁을 찾아가는 게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딱히 시어머님이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내가 괜히 오버페이스로 시어머니를 대하다 보니 나 스스로가 너무 힘들어진 것이다. 아.. 앞으로 평생 뵙고 살아야 하는데,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이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조금씩 시어머님을 대함에 있어 힘을 빼기 시작했고 본연의 나의 모습에서 최대한 예의를 갖춰 시어머니를 대하는 스탠스를 찾으니 마음에 평화가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머님은 바로 그런 나의 모습에 서서히 서운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아이고야, 나의 노력은 모두 도로아미타불이구나. 그러나 이렇게 어렵게 찾은 나의 평화를 다시 되돌릴 순 없었다. 나는 다소 강경하게 다시 나의 입장을 피력하기로 했다.

 

어머님, 어머님께서 생각하시는 그 '딸 같은'의 기준이 뭔가요. 저는 아마도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그 기준을 죽을 때까지 충족시켜드릴 수 없을 겁니다. 설사 제가 억지로 맞춰 행동한다고 해도, 그것이 제 진심일 수는 없을 거예요. 진정 어머님이 원하시는 게 진실되지 않은 그냥 '딸 같은' 친절함, 싹싹함인가요? 저는 최대한 제 진심을 담아 어머님을 대하고, 모시고 싶습니다. 제가 어머님을 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지지 않도록 해주실 수 없나요.

 

그러나 어머님도 강경한 입장이셨다. 

나는 너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너 분명히 결혼 전에는 싹싹하게 굴지 않았니. 난 너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었는데, 결혼하면서 변했다. 내 친구 며느리는 같이 밥도 먹고 쇼핑도 한단다. 난 그런 것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아니 한 달에 한 번 그냥 전화해서 안부 묻는 것이 뭐가 어렵냐. 지난번 휴가 다녀온 것도 미리 말도 않고.(<-진심 이건 아직도 이해 안된다) 너는 그런 노력도 하지 않으려 하면서 무슨 진심이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여기서 참지 않고 반박했다.

 

매주 온가족이 함께 연락드리는 건 연락드리는 게 아닌가요. 그럼 영상통화로 물은 안부 다음날 따로 전화드려서 굳이 또 여쭈어야 하나요. 저만 따로 어머님께 개인적으로 연락드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다른 사람 이야기하시는 건 반칙입니다. 저는 다른 시어머니 이야기 보고 듣는 게 없을까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건 아무 쓸모없는 짓인 걸 알기에 애초에 꺼내지도 않는 겁니다. 어차피 제 시어머니는 어머니시니까요. 바꿔지지도 않고 바꾸고 싶지도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진심이 안 느껴지신다는 거, 노력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신 것은 제가 좀 더 표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소 발칙할 수 있는 진솔한 마음을 토해내면서 초반 약간 뜨거웠던 감정은 서서히 식었고, 어머님도 최근 시외할머님의 건강이 악화되시면서 예민해진 자신의 심리상태 때문에 조금 더 격앙되었던 거 같다며 슬쩍 물러나셨다. 나도 이사에 막달에 정신없어서 더 못챙겨드린 것 같다며 그날은 그렇게 일단락 지었다. 그날 곧 분위기를 회복하였고 지금까지 나는 날짜를 새어가며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따로 전화드리고 있고, 어머님도 조심해주시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든 이런 일은 생기고야 말 것이다. 아직 서로 평행선인 부분이 남아있기에.

 

그래서 그때 미처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한, 전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 얼마 전 읽은 나태주 시인의 한 시구절을 빌어 말씀드린다. 제가 오직 어머니께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제가 저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소중하다고 여겨주시길. 그냥 그렇게 있거라 해주시길. 저는 어머님이 그냥 어머님이기에, 반찬을 해주시고 기념일을 챙겨주시고 무얼 해주셔서가 아니라, 그냥 어머님이기에 존경하고 소중하고 감사하기 때문에, 어머님도 저를 그렇게 여겨주시길 오직 바랍니다.

 

 

출처: Pixabay

 

꽃 3

 

                            나태주

 

예뻐서가 아니다

잘나서가 아니다

많은 것을 가져서도 아니다

다만 너이기 때문에

네가 너이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안쓰러운 것이고

끝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히는 것이다

이유는 없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네가 너라는 사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