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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마케터의 일 | 장인성 지음

by 글쓰는전업맘B 2020. 7. 3.

 

 

 

 

한 줄 감상: 마케터라면 공감과 위로를, 마케터 지망생이라면 아마도 여전한 물음표가.

 

나 자신이 마케터인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일단 '홍보마케팅' 부서에서 햇수로는 5년차, 실제로는 만 3년정도 일하고 있으니 어쨌든 마케터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는 두번째 육아휴직 중) 이렇듯 나는 스스로에 대해 내가 하는 일, 즉 홍보와 마케팅이 무엇인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 일을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 솔직히 확신과 자신이 없다. 5년을 쉼없이 일해왔다면 이렇게까지 자신없지도 않을텐데, 입사하자마자 임신해서 1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육아휴직을 1년하고, 또 이제 으쌰으쌰 열심히 해보자며 불태우려던 참에 임신을 해서 복직 2년만에 또 육아휴직에 들어서서 더욱이 커리어적인 전문성에 대해 스스로 초조함이 커져있는 상태이다.

 

이런 나에게 이 책의 제목과 글쓴이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마케팅이 무엇인지, 그것을 업으로 삼는 마케터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 나아가 그 우아한형제들을 탄생시킨 마케터는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려줄 것 같은 책 제목에 덥썩 손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펼친 머리말에서 나는 순간 이 사람이 내 상사였던가 하고 잠깐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굉장한 위로와 안도감을 느꼈다.

 

 

 

네 그게 바로 접니다.

 

 

지금까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딱 저거였다. 뭐 더 더할 (자잘한) 건 많지만 여튼 핵심은 시궁창 잡다한 일투성이라는 것.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마케팅 잘한다는 회사의 마케터가 이렇게 이야기해주니 지금까지 나의 고민, 즉 내가 하는 잡다구리한 일이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고민이 아닌 것 같은 기분에 위안이 되고 안도가 되고 또 이 책 끝까지 꼭 읽어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마구 들었다.

 

글쓴이의 적당한 위트와 편안한 문체에 홀려 자칭 난독증인 내가 정말 단숨에 읽어버렸다. 책 중간중간 너무 주옥같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들, 공감의 사례들, 위로의 말들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 밑줄 쳐논 몇 구절을 적자면 아래와 같다. (사실 격공한 구절들마다 풀고싶은 썰이 참 많은데, 마치 군대 이야기처럼 경험해본 무리들에게만 재미있고 공감되는 포인트들일 것 같아서 그 부분은 각설한다. 나중에 동료들이랑 얘기해야지..)

 

'싫은 것'과 '이해 안 되는 것'을 구분하지 않으면, 어느새 우리는 좋아하는 것만 이해하는 사람이 됩니다. - p.56

일 잘하는 사람들은 '왜'를 먼저 확인합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 싶은지 분명히 합니다. '왜'와 '목표'는 이어져 있습니다. '왜'를 찾고 '목표'를 알고 공감하고 공유해야 합니다. - p.81

마케터는 회사 내에서 우리 상품에 가장 심드렁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 상품을 누구보다도 깊이 알고 우리 브랜드를 누구보다도 좋아해야 합니다. 기획자만큼 깊이 알면서 소비자만큼 얕게 보는 일, 좋아하는 동시에 심드렁한 자기분열 상태를 유지하는 것, 어려워 보이지만 마케터가 가져야 할 이중인격입니다. - p.86

짧은 시간에 초벌을 완성하려면 자료조사는 언제나 머릿속에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수집해서 차곡차곡 쌓아둔 경험자산들을 유용하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 p.108

안 되는 이유를 먼저 말하는 건 경험적으로 좀 있어 보입니다. …(중략) 그런데 이게 정말 똑똑하고 멋진 것 맞나요? 사실은 두렵고, 안하고 싶은 것 아닐까요? 책임지기 싫고, 일을 실현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 아닐까요? - p.122

<정해져서 내려오는 일> 
때때로 구성원들이 정해진 내용에 공감을 못할 때가 있는데요. 쉽게 말해서 '이거 왜 하는지 모르겠다'싶을 때죠. …(중략)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이해해서 성취의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p.141

진짜 문제는 이 목표가 다를 때입니다. …(중략) 가장 중요한 공동목표를 다시 확인하고 목표에 집중하도록 해야 합니다. p.158

설득은 이해시키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설득의 절반은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이해하려면 여백이 필요합니다. 아직 마음을 굳히지 않은 공간 말이죠. 확고하지 않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때로 내가 설득당해도 됩니다. 내 의견을 관철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의 해결책이 나아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 p.161

마케터에게 가장 힘든 일은 어떤 것일까요?
저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 일, 방향에 공감할 수 없는 일이 힘듭니다. 일의 배경과 목표를 알면 방법을 챙길 수 있지만, 앞도 뒤도 없이 방법만 챙겨달라고 하면 일을 잘하기 어렵습니다. 목표가 뭔지 모른 채로 하는 일은 불안하고, 여러 가지 해결방법을 찾아내더라도 어떤 게 더 나은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일 시킨 사람은 만족하더라도 말이죠. 실행하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응하기도 어렵습니다. 목표가 무엇인지, 어떤 결과를 내야 하는지 모르면 그래요. - p. 196

 

그런데 읽고 나서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음..이건 마케터의 일이라기 보다 그냥 일을 잘하는 사람 즉 일잘러의 덕목과 태도, 자세 그리고 약간의 스킬을 매우 현실적으로 정리해 놓은 것 같군.' 

 

뭐 책에서도 밝혔지만 일하는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태도, 자세가 마케팅이라는 직무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직무, 현장에서 적용되는만큼 중요한 일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만약에, 마케터가 꿈인 어떤 학생이나 취준생이 마케터가 진짜로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케이스 중심으로 궁금했을 때 이 책이 확실한 답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면 그건 조금 아닌 거 같다. 글쓴이도 말했지만, 이 책의 내용은 전적으로 마케터 장인성의 일을 중심으로 쓰고 있고, 마케팅은 단독의 정형화된 어떤 업무가 아니다. 산업분야에 따라, 마케팅의 대상에 따라, 회사의 규모에 따라, 어쩌면 모든 회사마다 마케터의 일은 모두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글쓴이도 책의 마지막에서 독자인 마케터 아무개님의 일을 알려달라며 마무리한 것일지 모른다. 

 

결국 이 책에서 말한 마케팅의 본질인 1. 목표 세우기 2. 방법 찾기 3. 계획 실현하기를 가슴과 머리에 새긴 채 각자 몸 담고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 나도 지금 해야하는 일을 '싫다고 불평불만만 하지말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무슨 일이든 '경험 자산'을 쌓는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지. 단, '왜' 하는지는 좀 따져보고.